개발 블로그 1년 회고 - “척”에서 시작해서
블로그 시작
처음에는 멋져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개발 블로그는 내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를 다듬고 표현을 다듬고… 좋은 장점들이 많아 개발 뿐만 아니라 오롯이 내 역량을 키우기에도 좋은 과정이다.
근데 더 솔직히 다른 개발자들 블로그 읽으면서 “나도 저렇게 써보고 싶다” 생각했다. 2024년 11월, 해커톤 끝나고 뭔가 남기고 싶어서 첫 글을 올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근데 잘 쓰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다른 글 참고해서 말투 다듬고, 흐름 정리도 하고. 이게 내 목소리가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1년간 쓴 것들
총 10편. 그렇게 많진 않다. 한 달 반에 한 편 정도.
돌아보니까 글을 쓰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어왔다.
초기: 막 끝낸 경험을 바로 정리
해커톤 후기, 테스트 환경 개선, 예외처리 전략. 프로젝트가 끝나고 겪은 것들을 정리하는 글이었다. “이렇게 해봤다, 이렇게 됐다” 위주.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목적이었다.
중기: 과거 작업을 꺼내서 다시 정리
다국어 시스템, SWR 도입 같은 글은 이전 회사에서 했던 작업을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꺼내 정리한 것들이다. 당시에도 비효율을 느끼고 개선하려고 도입한 작업이었는데, 글로 쓰면서 그때의 결정을 다시 정리하고 맥락을 붙이는 과정이 있었다. 모노레포 글은 새 프로젝트에 적용하면서 쓴 거라 조금 결이 다르긴 했고.
최근: 문제 설정을 더 의식하게 된
XState, Offline-First. 이 시기쯤 되니까 작업할 때 문제 자체를 먼저 정리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불편함을 느끼고, 대안을 검토하고, 설계를 여러 번 수정한 과정을 담았다.
기록 → 복기 → 문제 설정. 글을 쓰는 관점이 조금씩 달라졌다.
제일 기억에 남는 글
가장 최근에 쓴 Noline 프로젝트에 관한 글이다.
그동안 나름 문제를 정의하고 개발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정말 그랬나?” 싶었다. 유튜브에서 “실제 불편함에서 시작하는 개발이 진짜”라는 얘기를 보고 와닿았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실제로 겪은 불편함에서 시작해보고 싶었다.
해외여행 중 네트워크가 끊기면 앱이 무력해지는 경험. 로밍 안 켜면 카카오톡도 네이버 지도도 안 되고, 현지 유심 사도 지하철이나 건물 안에서는 끊긴다. 바로 그 순간 길을 찾아야 할 때 앱이 멈추는 경험. 이걸 직접 해결해보고 싶었다.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모든 여행을 로컬에 저장하는 구조로 설계했는데, 오프라인 지도를 추가하면서 저장 공간 문제가 우려됐다. “모든 여행을 항상 로컬에 두는 게 맞나?” 고민하다가 Selective Activation이라는 구조로 갈아엎었다. 비활성 여행까지 오프라인에서 편집 가능하게 만들려다가 복잡도가 폭발해서 다시 단순화했다. 설계를 몇 번이나 갈아엎었는지 모르겠다.
동료 개발자한테 “이 프로젝트 관심 간다”는 말을 들었다. 기술 스택이 멋져서가 아니라 문제 자체에 공감해서였다. 결국 사람들이 반응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이거 나도 불편했는데”라는 공감이구나.
달라진 것
예전에도 문제를 느끼고 개선하려고 했지만, 요즘은 “이 불편함이 진짜 문제인가?”를 더 먼저 의식하게 된 것 같다. 기술 선택은 그 다음.
솔직한 고민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표현을 다듬는 게 습관이 됐다.
진심을 말했는데 전달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럼 표현을 고친다. 고치다 보면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이랑 멀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어쨌든 전달이 되는 게 먼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블로그도 비슷했다. 잘 쓰는 척하려고 다른 사람 글 보고, 구조 따라하고, 표현 다듬고. 그러다 보니 원래 하려던 말과 거리가 생기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척”에 대해서

최근에 흑백요리사 시즌2를 봤다. 거의 나오자마자 봤는데 정말 재밌게 봤었다.
그중에 우승자 최강록 셰프가 결승전에서 한 말이 꽂혔다.
“조림으로 사랑받았지만, 사실은 조림을 잘하는 척 해왔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우승하면서 “조림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당시엔 조림을 그렇게 잘하지도, 많이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근데 그 별명이 과분하다고 느껴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조림을 연구했고, 결국 진짜 잘하게 됐다고.
“조림을 잘해서 조림요정이 된” 게 아니라 “조림요정이 된 덕분에 조림을 잘하게 된” 거다.
나도 비슷한 것 같다. 글 잘 쓰는 척하면서 시작했는데, 그 “척”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감각은 알 것 같다.
(물론 최강록님의 요리실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근데 생각해보면 “척”이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면접 준비할 때도 “이 질문 나오면 이렇게 답해야지” 하고 연습하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척이다. 근데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되고, 내가 몰랐던 관점도 배우게 된다. 그냥 포장이 아니라 생각의 확장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 회고에서는 그 “준비된 나” 말고, 좀 더 날것의 생각을 적어보고 싶었다.
앞으로
“서비스에 기여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그게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는 조직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문제가 진짜 문제인가”를 먼저 묻는 습관은 계속 가져가려고 한다.
요즘 고민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비즈니스 가치. 이전에도 다국어 시스템 개선이나 CI/CD 효율화처럼 팀의 비효율을 줄이는 작업을 해왔는데, 앞으로는 더 구체적으로 사용자나 서비스에 직접 닿는 임팩트를 만들어보고 싶다.
다른 하나는 AI. 지금 AI가 개발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는데, 이 변화에 어떻게 잘 적응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AI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배울 계획이고, 직접 프로젝트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둘 다 아직 잘 모른다. 근데 블로그도 그랬다. 처음엔 잘 쓰는 척에서 시작했는데, 1년 지나니까 조금씩 내 소리가 나오게 됐다. 비즈니스 가치도, AI도 마찬가지로 “척”에서 시작해서 배워가는 중이다.
2026년은 이 고민들을 가지고 실제로 성과를 내보려고 한다. 아 그리고 블로그는 계속 쓰려고 한다.